#DaumWebMasterTool:a6939b0b800379b7fb2472181cea3027493622217bb2a16226e46db141da75ee:tw0r64HN2rd2PUPSGQCr6w== 양림 역사 문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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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rch for Historical remains (역사를 찾아서)

양림 역사 문화 마을

by 리치엔나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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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양림동은 오랜 세월동안 폐허가 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 였습니다. 양림동에서 사는 사람외에는 특별히 사람들의 발길이 닫지 않은 한적하고 허름한 동네 였는데 몇년전부터 양림동이 관광지로 바뀌고 있다고 해서 가 봤습니다. 양림동은 광주공원이 있는 곳이면서 과거 광주에서 제일 번화가였던 충장로가 근처에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젊었을때 대학다닐때는 주로 충장로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험때는 충장로 학생회관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하고 학생회관 도서관 골목길에 있는 티김집에서 상추티김을 먹고 놀다가 집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카페가 곳곳에 많이 있어 카페에서 친구들과 만남 장소로 이용하지만 우리가 대학다닐때는 서점, 커피숖, 백화점이 충장로에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장소가 충장로 우체국앞이나 가든백화점, 광주극장 앞에서 만나 충장로를 돌아다니다 보면 얼굴아는 친구들을 거의다 만나는데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에어리어가 양림동으로 바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양림동이 스마트한 역사도시가 되어 과거와 현재를 공존하는 시간속에 공간으로 조성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양림동 역사 문화마을 들어가는 입구인데 커다랗게 문이 만들어져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 듯 역사속의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주로 이곳에서 길이 남을 만한 역사적 인물이 필름속의 등장 인물들인데 그들과 양림동 사람들을 중심으로 양림동 마을이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양림의 문을 소개하는 글이 이곳에 새겨져있어 옮겨 적어 볼까 합니다.

양림동은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마을입니다. 1904년 배유지(유진벨)선교사가 양림동에 정착하면서 근대화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양림동은 어려웠던 시절에 등불이 된 선각자와 뛰어난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오랜세월 양림과 함께 했던 유적지가 곳곳에 남아 양림에 내딧는 첫 발걸음은 시간의 흔적속에 묻어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양림의 문은 양림의 입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양림동의 상징색인 회색 고벽돌과 세월의 침잠케하는 철제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철제(내후성강판 )는 처음의 모습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시간때가 묻으면서 색이 바래거나 질감이 변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여 인간의 삶에 대한 기억이 작품의 역사로 간직되도록 하였다 합니다. '양림의 문' 상판에 위치한 인물은 선교사와 예술인을, 다른 한곳의 인물은 양림동 사람을, 양림의 문 옆에 있는 조형은 오웬기념각의 입구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주위의 회색 고벽돌은 의자형으로 제작 쉼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조성했다고 합니다.
양림동 기독병원에 아이를 출산하러 간 이후 양림동에 올 일이 없어 차로 지나가기만 했을 뿐 한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는데 들어와 자세히 알고보니 양림동이 상당히 역사가 깊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때는 충장로가 중심축이라서 주로 충장로에서 헤메고 다녔는데 요즈음 젊은이들에게는 더 넓고 광범위하게 에어리어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역사도 바뀌는 것 같다는 느낌이였습니다.

양림동 들어가는 입구에 주황색으로 화려하게 채색된 갤러리가 있습니다. 이곳 갤러리에서는 메타버스 라는 작품으로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카페인데 새로 지어진 건물에 카페와 원룸 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옛 양림동은 없어지고 새로운 시설들이 들어서 미관을 깨끗하고 살기좋은 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광주 마실길이 지도에 잘 나와 있는데 양림동에서 투어를 하려면 이곳 도심 도보투어 지도를 보면 되는데 굉장히 넓기 때문에 하루에 다 돌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도보 투어 지도를 보고 코스별 투어 길을 적어 드리겠습니다.

♧광주 마실길 도보투어♧

◇ 코스 1 김현승 플라타너스길
아시아 문화 전당 > 양림동 > 푸른길 > 조선대
( 4.4km 2시간 5분소요 )
◇ 코스 2 예술가 유람길
아시아문화전당 > 예술의 거리 > 금호시민 문화관 > 대인시장
( 2.1 km 1시간 30분 소요 )
◇ 코스 3 정율성 음악 산책길
아시아문화전당 > 불로동 정율성생가 > 양파정 > 정율성 조각상
( 1.9 km 1시간 28분 소요 )
◇ 코스 4 추억의 산책길
아시아 문화전당 > 충장로 > 학생회관 뒷골목 > 오드실용 음악학원 > 조이 댄스 > 광주 우체국
( 1.8km 1시간 26 분소요 )
◇ 코스 5 민주 열사 오월길
아시아문화전당 > 구도청별관 > 5.18 민주광장 분수대 > 전일빌딩 > MBC 옛터 > 5.18민주화 운동기록관
( 1.3 km 1 시간 20분소요 )

이곳은 양림동을 안내하는 탐방객의 쉼터라고합니다. 주차장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걸터 앉아 쉴 수 있는 마루도 있어 쉬었다 가기에 참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안에는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른보면 역사적 인물의 집같아 아무리 흔적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쉼터가 너무 멋지게 지어져 있습니다. 알고 보니 양림동을 안내하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출처 : 네이버 통합 검색

◇ 우리나라 전통 기와집 ◇
1989년 3월 20일 광주광역시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대문간, 곳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배치된 상류 주택양식의 기와집이다. 건립 당시의 소유자는 정병호(그의 부친은 정낙규)인데, 1965년 현 소유자 이장우의 가옥으로 이전되어·보존되고 있다. 안채의 상량문에 ‘광무삼년을해이월십일축시(光武三年乙亥二月十日丑時)’로 기록되어 1899년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채의 평면형태는 ㄱ자집 형태로 정면 6칸에 좌우 퇴(退)가 있다. 우측면은 4칸과 후퇴, 좌측면은 1칸과 전후퇴로 되어 있다. 방은 좌로부터 툇마루, 1칸의 작은방, 2칸의 대청, 2칸의 큰방, 1칸 1퇴의 부엌, 그리고 ㄱ자형으로 꺾인 2칸의 작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2고주 5량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세벌대의 다듬돌 기단 위에 원형 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과 사각기둥을 세웠다. 보아지와 우미량(牛尾樑) 툇보에 도리를 결구하였다. 대청은 2분합 겹문으로 안은 미닫이, 밖은 여닫이문을 설치하였다. 대청의 문은 4분합 들어 열개문이다. 여닫이문을 고정시키기 위해 중인방(中引枋)에 문잡이로 거북장식물을 두었으며, 들어 열개문을 고정하기 위해서 참새모양의 장식물을 장여에 두고 있다. 전반적으로 뼈대가 굵고 건실하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전통가옥이다.

전통가옥을 디저트 카페로 개조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양림동에는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새로운 가게들이 많이 있어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새로운는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림동을 투어하다 보면 도시에 생뚱맞게 중수비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여 이러한 비석이 왜 이곳에 세워졌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곳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전통가옥들이 주로 집성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 였었기때문에 이러한 비가 있지 않나 생각 됩니다. 효도비의 일종인 이비에 대한 전문이 새겨져 있어 간단히 말하자면 옛날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있었는데 공부도 잘하고 똑똑해 조선시대 선비이면서 남원 부사와 나주 목사를 거친 명망가이자 효성이 지극한 목민관 이였다고합니다. 이 사람이 너무 훌륭해 예조판서가 왕에게 상소를 올려 그의 뜻을 기리기위해 이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항상 부모님께 효도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 역사에 길이 남는 훌륭한 사람이됩니다.

이곳은 지은지 얼마 되지 않는 전통가옥인데 간판이 없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워 사진을 게시해 두었습니다.

양림동 스튜디오 앞에 예쁜 그네가 있어 엄마와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시간여행을 하며 놀고있는 모습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이 이곳에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적인 인물로 이옥선 할머니를 선정하였다 합니다. 이옥선 할머니의 꽃다운 16세 소녀시절의 모습과 92세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답니다. 과거의 소녀와 현재의 할머니가 한장소에 있으므로써 과거와 현재는 서로 분리 될 수 없고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 한다고 합니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규명되어야하며 우리의 역사적 아픔과 상처가 치유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답니다.

펭귄마을에 느린 우체통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 우체통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체통에 관한 미담과 역사적 의미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주로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는데 지금은 통신방법이 아주 많이 발달하여 편지는 거의 쓰지 않지만 옛향수 처럼 편지를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이곳은 펭귄마을 이라고 합니다. 팽귄은 북극에 사는 동물인데 아주 귀엽게 걸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이 왜 펭귄마을 이라고 했을까 궁금 했는데 이마을 촌장님께서 교통사고로 목발을 짓고다니는 주민이 펭귄처럼 걷는다고 해서 텃밭에 펭귄마을 이라고 푯말을 붙힌 연유로 펭귄마을 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또한 버려진 폐품을 벽에 걸어둔 계기로 하나 둘 폐품을 모아 마을을 꾸미다 보니 사람들이 찾는 멋진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펭귄마을은 폐품을 재활용하여 주로 포토죤을 만들어 역사와 사람이 하나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폐허로 버려진 곳도 아끼고 사랑하면 멋진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나이가 중년인 우리들은 학교다닐때 이후로 주로 시외로 다녔기 때문에 이곳에 이러한 관광지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직접 와서 보니 양림동이 역사와 문화, 예술이 숨쉬는 멋진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양림동 펭귄마을 공예의 거리라고 합니다. 공예의 거리 작품들은 주로 금속, 목공, 섬유, 도자기 등등의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고 만들어 놓은 작품을 사 가지고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주로 청년 작가들이 핸드메이드로 만든 생활용품들인데 핸드메이드로 만든 제품은 웬지 정이가고 더 좋아보여서 구경하게되고 사고 싶어집니다.

이곳은 머그컵 만들기를 하는 장소 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 와서 내가 직접 머그컵을 만들어 사가지고 가면 더 애착이 갈 것 같습니다. 또한 이곳에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구경하다 보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많을 것 같아 자녀교육에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내가 직접만든 물건은 소중하게 여기고 귀하게 생각하기때문입니다.

이곳은 양림버들 예술마켓 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예술 체험을 하고 수공예품 만들기나 버스킹공연을 하는 곳이라고 힙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 곳인 것 같습니다.

양림 버들숲 마을 이야기

조선중기 (1550년~1700년) 부터 휘늘어진 버드나무가 무성하다 하여 양림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직강 공사로 인해 버드나무가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1943년 학강초등학교를 개교하여 한그루의 능수버들이 심어지고 자라오다 2015년 10월 3일 새벽 태풍으로 뿌리까지 뽑혀 고사직전에 있는 능수버들을 양림동 주민들이 마을의 유일한 상징목이 사라진다는 안타까움에 관계기관의 협조 아래 이곳으로 옮겨와 현재의 모습으로 양림의 유래를 상징하며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양림동 발전회에서는 매년 학강초등학교 개교기념일인 5월 6일에 맞추어 버드나무를 기념하는 행사를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광주에는 능수버드나무가 조선시대 부터  심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능수 버드 나무가 많아 양림이라는 칭호까지 지은 걸 보면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에는 능수버드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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