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평사리 최참판댁
섬진강을 따라 여행을 하다보면 화개장터가 있고 화개장터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면 최참판댁 이정표가 크게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참판댁은 박경리에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했지요. 때문에 이곳에 오면 한번쯤 들려보고 싶은 곳이 최참판댁 인데요. 날씨가 너무 더워 얼굴이 익어 버리는 줄 알았어요. 집에 와서도 얼굴이 화근거리고 닳아 오르네요. 더울때는 옷도 얇게 입고 시원한 모자를 쓰고 얼름물도 챙겨 가세요. 저는 한컷이라도 더 찍을려고 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사진을 찍다보니 얼굴 익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찍었습니다.ㅎㅎ

최참판댁 들어가는 입구에 최참판댁 표지가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최참판댁 가는 길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어 쉽게 찿아 갈수 있도록 되어 있고 전경이 너무 멋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상평 마을의 유래가 큰 바위에 새겨져 자리하고 있습니다. 상평마을의 유래는 사람들이 거의 보지않기 때문에 유래를 써서 알아 보려고 합니다.
◇평사리 상평마을의 유래◇
평사는 변환시대에도 악양의 대외 창구였고 마을 형성의 깃점이 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섬진강을 통한 교통의 발달이 포구로써 역할이였다면 신라때나 가야시대에 성립되고 변성된역촌은 육로의 교통을 활발하게 만들어 외래 문화의 수용이나 교역에 있어 중요한 목이였던 만큼 변환 시대에 이땅의 낙노국이 유지되는 활역소였다고 여겨진다. 진주목 화개연의 지역으로써 악양 소상팔경의 하나인 평사낙안과 같다하여 평사라 하였는데 숙종 28(1702)년에 하동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개면의 둔촌과 악양면의 신암, 삽암, 병사역촌을 병합하여 평사리라해서 악양면에 편입 되었다 한다. 현재는 상평, 외둔을 합하여 평사리라 하며 문학작기 박경리선생님의 작품인 소설 '토지'의 고향 주 무대이며 매년 10월이면 평사리 토지 문학제가 열리는 곳이라고 한다.

박경리선생님의 기념비가 크게 세워져 있는데 박경리선생님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면
박경리선생님은 1926 년 10월 28 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 났다고 합니다. 1969년 6월부터 지필을 시작하여 1994년에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는 한국 근 현대사의 전과정에 걸쳐 여러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합니다. 1957 년 현대 문학신인상, 1965년 한류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등을 수상 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 협회에서 주최하는 20세기를 빛낸 예술(문학) 인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박경리선생님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문학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입구에 막들어 오면 주차장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요. 주차장 안에는 하동 여행의 안내도가 크게 표시 되어 있고 하동여행의 추천 코스도 잘 안내 되어 있습니다.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작은 주차장이 여러군데 마련되어 주차 걱정은 안하고 안심하고 오셔도 되겠습니다.

우리나라 전통기와 집으로 화장실이 너무 멋있고 깨끗하게 지어졌습니다.

졸졸졸 도랑물이 흘러 더운 마음을 시원하게 하여주네요. 예쁘게 설치한 인공 도랑을 따라 약간의 경사진 길를 올라가다 보면 2주차장이 나오고 우리 전통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길옆으로 줄지어 서 있습니다.

최참판댁 들어가는 길에 입장료받는 곳이 있는데요.
최참판댁 관람 요금표를 살펴보면
□성인 2,000 □단체 1,500
□청소년 1,500 □단체 1000
□어린이 1,000 □단체 500
□경로 우대자, 장애인, 국가유공자 □무료 (신분증제시자) 로 되어 있습니다.
□운영시간 연중무휴 09:00~18:00
□전화 번호 055 - 880 - 2382~4 궁금하신 내용은 전화해서 알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참판댁으로 가는 길가에 전통우리옷, 전통 물건, 전통 먹거리, 카페등등 전통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하나의 우리나라 전통 관광상품샵으로 테마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 온 것 같은데요. 아담하고 너무 이쁜 초가집이 역사의 산지식을 담고 있어 옛 우리 가옥 형태나 삶의 모습을 간접 체험으로 보고 배울 수 있는 터전 인 것 같습니다.
돌담에 담쟁이 덩굴이 자라고 있어 더욱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 옛 우리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더 정겹습니다.

이곳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배경으로 '토지'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는데요. 토지 이외에도 명당, 미스터 션샤인, 구름이 그린 달빛, 궁합, 푸른 바다의 전설, 하녀들, 엽기적인그녀 등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가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정표가 있는데 화살표 쪽으로 가면 토지 장터(식당 주막), 야외공연장, 최 참판댁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이 최참판댁입니다. 참판이면 조선시대 종이품의 관직 이라고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장관 정도의 벼슬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껏 여기에 사는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셨는 줄 알았는데 실제 인물은 아니고 소설속의 배경인물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마을도 자연마을 을 소설을 바탕으로 드라마 세트장으로 재현해 놓은 전통민속마을 이라고 하네요. 저는 토지 소설을 읽다가 사투리가 하도 많이 나와서 안읽고 말았는데 무엇이든지 끝까지하고 깊이 들어가 봐야 깊이를 알고 속 내막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최참판댁 가옥 안내현황에 보면 잘 나와 있는데요. 최참판댁은 한옥 14동으로 조선시대 후기 우리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곳은 외부로 나있는 다른 문으로 농사를 짓는 소작인 또는 우(소)ㆍ마(말)가 출입하는 문으로 여겨진다합니다.

문간채에는 외부로 나있는 다른 문으로 들어오는 농사를 짓는 소작인이 거주 또는 우(소)ㆍ마(말)가 거주하는 곳으로 마구간 외양간 등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별당채 들어가는 입구인데 안채와 연결된 문 인 것 같습니다.

이곳은 별당채로 안채 곁이나 뒤에 따로 떨어지게 지은 집으로 자녀들이 귀거하는 집인 것 같습니다

이곳은 안채인데 집안의 주인 마님을 비롯하여 여성들의 주된 생활 공간이라고 합니다.

안채의 부속 건물로 사용된 중문채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고합니다. 중문채에는 주로 쌀광과 김치광 장작광이 달려있으며 소규모의 곡식 도정을 할 수있는 디딜방아를 설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행랑채는 하인들이 귀거 하거나 곡식을 저장해 두는 곳이라고 합니다.

뒤채는 안채나 사랑채 뒤에 마련된 곳인 것 같습니다.

사랑채에는 양반가 사대부의 바깥 주인이 거주하는 곳이며 이곳에서는 손님을 접대하기도하고 여유를 가지고 휴식을 취하는 곳 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14개의 가옥에서도 살펴본 봐와 같이 조선시대에는 엄격한 신분 사회( 양반, 중인, 상민, 천인) 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회와 비교하면 정반대의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 내게 합니다. 수려한 경관과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가옥에는 누구든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가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방사우( 붓ㆍ먹ㆍ벼루ㆍ 종이 )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주로 사용하는 필기도구 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연필이나 볼펜이 없었기때문에 주로 문방사우를 사용하여 글을 썼다고 합니다.

이곳은 사당으로 가는 길 인 것 같습니다. 옛날 조선시대 집들은 집 주변에 대나무가 심어져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 주변에도 대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대나무를 보면 웬지 으시시한 느낌이 많이듭니다. 제가 어렸을때 밤에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무서웠거든요. 꼭대기 집인데다가 대나무까지 있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무서웠겠어요.ㅎㅎ 지금은 대나무가 없지만 대나무 있어도 아무렇지 않고 대나무가 웬지 분위기있어 보여서 더 좋습니다.

이곳은 장독대인대 장독대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저장해 두고 오랫동만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준비되어 있는 곳 입니다. 지금도 우리 가정에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에 가면 이러한 장독대가 있어 간장, 고추장, 된장, 장아찌, 다양한 발효식품을 저장해 두고 먹는데 사람먹고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는 것 같습니다.

드넓은 평사리 마을 들녁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좋은 이곳에 최참판댁이 있어 자연을 눈에담고 우리 전통 가옥의 역사를 마음에 담아 소설 토지의 배경된 이곳을 거울 삼아 옛 우리 조상들의 삶을 엿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인 것 같습니다.
2. 박경리 문학관

최참판댁 바로 옆에 있는 이곳은 박경리선생님의 문학관입니다. 이곳 안에는 박경리선생님의 생애와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하소설 '토지' 5부작의 책 기록물, 기록과정들이 전시되어 있고 박경리선생님의 작품과 삶을 엿 볼수있는 곳 이기도 합니다. 문학에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가치를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는 박경리선생님이 토지를 쓰게된 동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외갓집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이가 어느정도 지긋한 사람들은 외갓집의 잊지못할 추억이 많을 꺼예요. 저도역시 어릴때 부터 외갓집이 가깝게 있어서 자주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라면서도 외갓집이 서울에서 잘살기때문에 신세를 많이 지고 자라 왔는데요. 지금은 나이가들어 외갓집에 가지도 않고 소식만듣는 정도 이지만 외갓집은 나를 키워준 잊지못할 어린시절의 추억입니다.

이곳에는 박경리선생님의 의문인 글을 왜 쓰는가의 대한 물음이 나와 있습니다. 글을 왜 쓰는가의 물음에 왜 사는가의 물음과도 결부 된다고 하였는데요. 삶이 곧 글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 할 수는 없고 인간의 삶은 고귀합니다. 고귀한 한생명이 지고 나면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태어나 삶을 이어가기 때문에 글은 영원히 이어져 삶의 역사를 대변하고 문명과 문물을 대변하고 사회현상을 반영하고 역사와 역사의 끈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도 티스토리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자세히 관찰 하면서 쓰다보니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되고 네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혀지면 그사람 역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가치있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박경리문학관은 소설 [토지]의 배경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작가 박경리에 삶과 문학을 되새기고 기억하고자 2016년에 건립 되었다고합니다.
소설 [토지]는 1969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에 탈고한 대하소설로서 만 25년간의 창작 기간을 거쳐 완성된 대하소설 이라고 합니다. [토지]는 원고지 약 3만 1천 200여장 전체 5부 25편 362장의 규모로 약 6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박경리문학관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과 전쟁을 관통한 작가 박경리의 삶과 4반세기에 걸쳐 이루어낸 생명의 창조물 [토지]를 담아낸 공간 이라고 합니다.

박경리문학관 마당에 원고지에 쓰여진 글이 여러개 있어 그중 하나만 써 보려 합니다.
♧생명 ♧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 이상의 진실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까지 껴안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 생명의 아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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