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악산 금산사
주소 :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우리가 살아가면서 친구가 참 중요 한 것 같아요. 가족도 중요하고 형제도 중요하지만 친구도 참 중요한 존재 인 것 같습니다. 제가 소개하고 싶은 친구는 학교 친구도, 고향 친구도, 직장에 다니면서 만난 친구도 아닙니다. 그냥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예뻐서 댓글을 남겼다가 만난 친구입니다. 그것도 15년전에 말입니다. 참 오랜 세월이 흘렸죠!! 가끔 연락해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하면서 사심없이 이야기하면 아무꺼리김 없이 받아주는 아주편한 친구 어쩜 나와 닮은 점이 많아 마음이 통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친구가 오늘은 자기가 사는 마을에 놀러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전주에서 조금 떨어진 정읍이라는 곳인데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전주에서 정읍까지는 광주에서 한시간이 걸립니다. 한시간을 운전하고 신태인을 지나 정읍에 갔습니다.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만나 모악산에 있는 금산사에 가서 구경도하고 산책도 할겸 모악산 금산사로 갔습니다. 경내로 들어서니 사방이 천년된 나무들로 우거져 참 넓고 공기도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평소 생각하기는 금산사 하면 백제왕 견훤이 아들한테 정권 물려주고 유폐 되었던 곳 아닌가? 하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경내도 별거 없을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하게 크게 터를 잡고 있는 웅장한 절 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작 한번 와 볼걸! 한번 와 봐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야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금산사 들어가는 길 목입니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라 나무들이 우거져있고 길 목도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흙길이 맨질맨질 할 정도로 달아져 있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짐작이 갑니다. 공기도 맑고 산새도 좋아 와서 보면 힐링 그자체 입니다.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밤낮으로 이곳에 와서 산책을 한다고 합니다. 참깨끗하고 맑아 산책하기에 너무 좋은 곳 같았습니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등산도 하고 경내를 산책하면서 구경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곳은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공기가 너무 좋아 맑고 깨끗한 곳에서 템플스테이 하면서 몇칠 쉬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쉬면서 마음에 여유도 찾고 생각도 하고 힐링도 하면서 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네이버 민족 문화 대백과 인용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견훤이 아들들에게 유패 된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미륵임을 자처했던 후백제 왕 견훤이 이 절을 자기의 복을 비는 원찰로 삼고 중수했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견훤은 말년에 넷째 아들인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가 맏아들인 신검을 비롯해 양검, 용검등 아들들에게 붙잡혀 금산사에 유폐되기도 했습니다. 신검은 아버지를 금산사에 유폐하고 금강을 죽인 후 왕위에 올랐습니다. 석 달 동안 유폐 생활을 하던 견훤은 감시자들에게 술을 먹이고 금성(지금의 나주)으로 도망 쳐 왕건에게 투항하고 자기 아들을 쳐줄 것을 청했습니다. 왕건이 마침내 그의 아들들을 쳐 후삼국을 통일한 지 며칠 만에, 견훤은 착잡한 번민과 울화에 싸여 등창이 나서 논산시 여산에 있던 황산사에서 죽었다고합니다.

네이버 민족 문화 대백과 인용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 되었답니다. 766년 진표율사는 미륵 장육 존상을 세우고 미륵전을 지어 점찰법과 미륵 십선계로 민중을 교화하였다합니다.1079년(고려 문종33) 혜덕왕사 소현 화상이 대사구와 봉천원구, 광교원구 등 총 88당 711칸의 대가람으로 중창하였고, 35부 353권의 불교전적을 판각하여 유통시킴으로써 유가종찰과 미륵성지의 위상을 한층 격상시켰답니다. 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뇌묵 처영대사는 천여명의 의승군과 함께 왜군을 격퇴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답니다. 1635년(조선 인조13)수문대사가 지훈, 덕행, 천성, 응원, 학련, 대전, 운근 등 15명의 화상과 함께 35년간에 걸쳐 대적광전과 미륵전, 대장전 등 대사구역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합니다.이곳 금산사는 산사를 감싸고 있는 모악산의 산새도 아름답지만 넓고 조용한 경내의 모습이 평온하고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내가 갔었던 날은 사월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스님들이 경내에서 연등 다느라 분주했습니다.

네이버 민족 문화 대백과 인용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처음 지어졌다합니다. 창건 당시에는 소규모 사찰이었으나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합니다.. 이때 진표율사는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여 미륵전에 모셨고, 금당 남쪽 벽에는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자기에게 계법을 주던 모습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 이래로 금산사는 미륵신앙, 즉 신라 오교의 하나인 법상종의 근본도량으로서 이 지역 불교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금산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미륵전에 있는 미륵불이 주불이며 석가불은 대장전에 따로 모셔져 있답니다.
이곳 미륵전은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 중 하나라고 하는데 지하에는 용이 산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웅장한 미륵불이 보는 사람을 압도하게 합니다.

네이버 민족 문화 대백과 인용
모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금산사는 호남 미륵신앙의 도량입니다. 드넓은 경내에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을 비롯하여 노주, 석련대, 오층석탑, 혜덕왕사 진응탑비, 당간지주, 석종, 육각다층석탑, 석등 등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으며, 대적광전, 대장전, 명부전, 나한전, 일주문, 금강문, 보제루 등의 건물과 심원암, 용천암, 청련암 등 부속 암자를 거느린 거찰이라 합니다.

네이버 민족 문화 대백과 인용
여기서 하나 알고 가야 할 것은 모악산과 금산사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모악산 금산사라는 이름은 큰 산을 뜻하는 고어 엄뫼, 큼뫼에서 비롯했다고 합니다.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의 뫼라는 뜻의 모악으로, 또 큼은 금(金)으로, 뫼는 산(山)으로 적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온통 평야인 이 지역에서, 옛날부터 이 산의 존재가 외경의 대상이 되어왔음을 추측할 수 있음은 이 산사의 유래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몇백년을 지나온 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고 즐거운데 우리나라의 역사적 산물인 경내를 돌아보는 것으로도 너무 뿌뜻했고 역사를 많이 배웠습니다. 찬란한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이곳에 웅장한 미륵전과 대장전 각종 석탑들이 너무 보기 좋았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즐겁게 배웠습니다.
2. 원예 카페를 찾아서

모악산 금산사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고 차를 타고 조금 이동하다 보면 자연과 어우러진 카페촌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카페들이 있는데 디저트 카페, 마마, 대디카페, 브레드 카페 등등 다양하게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카페들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마마카페를 지나 시원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숲길을 지나 조금 걸어가다 보면 원예 카페가 있는데요.

넓은 창이 있는 이카페는 원예 카페라고 합니다. 앞에는 잔잔하게 흐르는 물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테이블이 있고 차를 주문하는 곳이 있는데 우리는 차를 주문하여 가지고 나와 밖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앉아서 차를 마셨습니다.

우리는 원예 카페에서 자몽차 1잔 10,000원 페퍼민트 1잔 8,000원 빵 2개 5,000원 좀 비싸긴 하지만 야외 테러스에서 차마시며 여유롭게 시간보내기 너무 좋은 오후입니다. 여유롭게 이야기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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